인문고전 원전을 읽어야 하는가?

  원전을 읽는다는 것은 언어의 수준이 다른 천재들과의 소통을 하는 것이기에 어려운 일이다. 물론 개념을 파악하고 내공이 쌓여 있는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초등학생이나 중고등학생들에게 원전 읽기는 어려운 독서 활동이다. 초등학생에게 원전을 던져주고 읽으라고 하면 이해할 수 있는 학생이 얼마나 될까? 2007년 주니어 김영사에서 서울대 선정 인문고전 50선을 만화로 엮어 출간했었다. 쉽게 읽힐 것 같은 만화책이지만 개념어 파악이 안되는 어린 학생들에게는 만화책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니어 김영사의 만화책 시리즈는 부모들의 교육 열기 때문에 엄청나게 팔렸다. 돈이 되다보니 이제는 만화책 인문고전 시리즈도 여러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그만큼 어려운 인문고전을 쉽게 읽히려고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보고 싶다. 그러나 아무리 쉽게 풀어 놓았다고 해도 인문고전을 만화로 접근하는 것은 옳지 않다.

  문자가 주는 장점인 상상력을 충분히 발휘하기 위해서는 원전이 아닌 요약본이라도 문자로 된 책을 읽어야 한다. 초등학생도 인문고전을 원전으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인문고전 독서 전문가들이 있다. 이유는 원전의 맛을 살리기 위해 반드시 원전으로 읽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이는 학생들의 독서 경험을 고려하지 않은 주장이다. 인문고전에는 다양한 분야가 있고 책의 페이지 또한 어린 학생이 감당할 수 없는 분량을 가진 원전이 있다. 내용 또한 난해해 성인도 이해하기 힘든 책도 있다. 물론 읽고 이해할 수 만 있다면 원전을 읽는 것이 좋다. 하지만 어떤 학문이건 그 학문의 최고의 경지에 다다르기까지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인문고전은 한 번 읽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여러 번 읽어야 한다. 처음 읽을 때는 쉽게 해제된 책부터 시작하면서 저자의 사상을 충분히 이해한 다음, 조금 더 성장 한 후에 원전을 읽더라도 거부감 없이 쉽게 읽혀질 수 있다. 이렇게 주장한 근거는 초등학교 도덕교과서에서부터 고등학교 윤리교과서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동서양사상가들의 사상을 학생들의 학력 수준에 알맞게 해제 해 놓았다. 물론 교과서에는 그들 사상가의 핵심사상만 거론 할 뿐 핵심사상을 뒷받침 해주는 논증이나 설명은 빠져 있다.

  서점에는 특정 인문고전에 대한 책 중 원전과 원전을 쉽게 풀어 요약한 책 들이 나와 있다. 이 책 중에서 아이의 수준에 알맞은 책을 골라 읽히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이라는 책도 원전을 비롯해서 다양한 수준으로 요약 해제된 책들이 출간되어 있다. 요약된 책에도 위대한 사상가의 핵심 사상이 그대로 담겨있다. 어릴 때부터 위대한 사상가의 사상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아이들에게 지혜의 선물이다. 책이라는 것은 10대 읽은 느낌과 20대 때 읽는 느낌 그리고 70대에 읽는 느낌이 다르다. 좋은 책은 가까이 두고 삶에 변화가 있을 때 다시 읽으면서 새로운 지혜로 만들어내야 한다. 굳이 10대 때 어려운 원전을 읽게 하면서 위대한 사상가들과 멀어지게 하는 것 보다는 쉬운 책으로 흥미를 갖도록 해주는 것이 좋다. 그러면 아이는 성장하면서 원전을 읽게 되더라도 충분히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쉽게 풀어쓴 인문고전이라도 부모와 함께 읽고 책 내용을 가지고 토론을 해야 한다.

인문학 열풍을 바라보며

몇 년 전부터 우리사회에 인문학 읽기 열풍이 불고 있다. 일반인은 물론이고 중·고등학교 학생과 심지어 초등학생들도 인문학 읽기에 빠져있다. 대형 서점의 인문학 코너에 신간 평대에는 매일 출간되는 인문학 책들이 즐비하다. 서점은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장소이기도 하다. 인문학의 열풍의 진원지는 작가 이지성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지성은 2005년 ‘성공하는 아이에게는 미래형 커리큘럼이 있다’라는 책에서 초등학생의 인문고전 읽기의 가능성을 거론하면서 부터다. 지금은 많은 작가들에 의해 다양한 계층의 연령대를 대상으로 인문학 읽기를 권하는 자기계발서 들이 속속 출간되고 있다. 하지만 대학에서도 인문학은 인기를 구사하고 있을까? 그 건 아닌 것 같다. 대학에 입학할 때의 인문학과의 인기(?)는 엄청나다. 물론 이면에는 고등학교에서 문과 학생들의 비중이 이과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아서 경쟁률이 치열한 면도 있다. 치열한 입시 경쟁을 뚫고 인문학을 전공한 학생들이 졸업할 때는 취업 문제로 인문학적 고민에 빠져든다. 지금 우리사회에서 청년실업자의 대부분은 인문학 전공자일 것이다. 이와 같이 인문학 전공자들이 천대받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학문적 특성에 있지 않나 생각이 든다. 시카고대학의 조셉 윌리엄스 교수는 그의 저서 ‘논증의 탄생’에서 개념문제와 실용문제에 대해서 설명했다. 개념문제는 질문으로 이루어지며 이에 대한 대답이 해법이며 어떤 문제에 대해서 이해를 목적으로 한다면 실용문제는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대다수의 문제들이다. 즉 개념문제를 다루는 학문은 순수학문이고 실용문제를 다루는 학문은 응용학문이다. 인문학은 질문에서 해법을 찾는 순수학문이다. 그래서 인문학이 실용적이지 못하고 개념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학문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런 학문을 배워서 어디다 써먹을까라는 의문을 가지는 사람도 많다. 그러다 보니 실전에 투입되는 인재로서가 아니라 교양으로서의 역할로 인문학 읽기를 권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인문학이 가지고 있는 개념문제를 실용문제 즉 응용학문으로 끌고 가지 못하는 사람들에 능력의 한계라고 생각한다. 비록 인문학이 순수학문의 프레임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이를 응용학문으로 끌어올린 위대한 인물들이 있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와 세계적인 첼리스트 요요마 그리고 장한나 이들은 인문학을 응용학문으로 끌어 올려 자신들이 원하는 꿈을 이루어낸 위대인 인물들이다. 개념문제와 실용문제를 융합하는 능력이 이 시대에는 필요하다. 이제 융합인재를 키워주는데 인문학 읽기는 큰 역할을 할 것이고 우리가 꿈꾸는 미래를 완성하기 위해서 인문학을 제대로 읽고 토론하는 장을 마련해보고자 한다.

인문고전이란 무엇인가?

먼저 ‘인문(人文)’이란 무엇인지 알아보자. 인문은 사전적 정의로는 ‘인류의 문화’를 뜻한다. 그렇다면 인문학[人文學, humanities] 은 어떤 학문인가? 인문학은 주로 인간과 관련된 근원적인 문제나 사상, 문화 등을 중심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을 말한다. 우리가 문·사·철이라고 부르는 문학, 역사, 철학을 지칭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자연과학(自然科學, natural science)의 상대적인 개념으로 인문과학이라고 불러지고 있다. 그렇다면 고전은 무엇인가? 고전은 말 그대로 오래된 책이다. 오래된 책이라고 정의하고 보니 너무 광범위한 범위가 되기 때문에 모호하다. 앞으로 필자는 고전을 인류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책으로 고전을 정의하겠다. 이 정의 또한 모호하기는 마찬가지지만 전문가들에 의해 검증 받고 객관적이고 보편적으로 고전임에 손색이 없을 책들을 고전으로 정의하고자 한다. 짧게는 100년에서 길게는 2,000년 이상 역사가 검증한 책을 고전이라 부르고자 한다. 필자가 다룰 인문고전의 범위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정의하고자 한다. 문학과 역사와 철학을 아우르는 것이 아닌 철학과 정치, 사회, 사상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한다. 물론 문학이나 역사보다 흥미 면에서는 떨어지고 난이도 또한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사고의 틀을 빠른 시간 동안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흥미보다는 인류의 삶과 사회를 지탱하는데 큰 힘이 되어준 사상서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인류의 삶에 획기적인 변화를 경험하게 했던 위대한 저자들을 인문고전 독서를 통해서 만난다면 여러분들도 그들과 같은 생각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독서는 독서로 끝나면 생각의 확장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반드시 토론이 필요하다. 제대로 된 토론을 통해서만이 인문고전독서 활동을 더 진보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 혼자 읽고 스스로 추론한다면 위대한 저자의 사고가 잘못 해석될 수 도 있다. 올바른 인문고전독서 활동이 될 수 있도록 필자는 인문고전독서의 독후 활동으로 인문고전독서에 적합한 토론의 방법론을 제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