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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헤로도토스의 역사2018-06-20 09:36
작성자 Level 10

 

기원전 5세기에 집필된 인류 최초의 역사서 헤로도토스의 『역사』가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원전 그대로 번역 출간되었다. 그리스 라틴 문학 번역에서 국내 최고로 손꼽히는 천병희 단국대 명예교수의 번역이다. 40여 년 동안 그가 한국어로 옮긴 대부분의 책은 ‘국내 첫 원전번역’이다. 정년퇴직 후 천교수의 작업 집중도나 속도는 노익장이라고 하기에도 믿기지 않는 정도다. 젊음의 짐을 훌훌 털고 자신만의 세계에 빠질 수 있는 노년의 자유와, 작업할 수 있을 때까지 그리스 고전을 손에서 놓지 않으리라는 애착과 열정의 산물로, 우리는 또 한 권의 원전번역 고전 목록을 갖게 되었다.

헤로도토스에 관한 오해_ 서울 가본 사람하고 안 가본 사람하고 싸우면...
여기 『역사』의 저자 헤로도토스에게 심각한 오해가 있었다. 그는 당시 알려진 세계의 동서남북을 두루 여행하며 웅대한 구상으로 각종 자료를 모아 『역사』를 집필했는데, 민속학 및 지리학적 발견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후대 역사가들은 그의 여행을 거짓으로 여겼으며 그를 허풍쟁이 ‘설화작가’ 정도로 치부했다. 그래서 그는 고대 역사학의 주류에서 벗어나 있었고 18세기에 와서야 “역사의 아버지”라는 명예를 회복했다. 그 이유는 헤로도토스가 다루는 『역사』의 시공간에는 동시대인이 경험하지 못한 세계, 믿어지지 않는 미지의 땅에 대한 기록이 많아도 너무 많았던 것이다. 먼 나라 옛 시대의 왕들, 서민들, 그들의 관습과 습관, 지형과 기후, 전설과 유적들... 그의 저술은 인류의 생활사 그 자체로, 여담(餘談) 형식의 지리학적, 인종학적, 민속학적, 역사적 자료들이 대량으로 제시된다. 이 책에는 참으로 많은 나라와 민족이 나오며 그 나라들의 성립에서 패망에 이르기까지를 누가 믿거나 말거나 기술하고 있다. “나는 들은 대로 전할 의무는 있지만, 그것을 다 믿을 의무는 없다.” 이것은 그의 역사 기술의 원칙이었고, 기록할 수 있는 최대한 다양한 시각과 의견을 기술했다. 이제 학문과 과학의 발달로 헤로도토스는 뛰어난 관찰력을 가진 위대한 여행가였고 지리학자였음이 밝혀졌다. 그는 인간의 관습과 과거 역사에 지칠 줄 모르는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실증적 학문의 대상으로 삼은 최초의 그리스인이었다.

그가 뚫고 지나온 시대
헤로도토스는 그리스 세계의 정신 활동에서 역사서술이라는 분야를 개척한 선구자이지만, 역사적 성격의 작품을 쓴 최초의 저작자는 아니다. 그는 그 이전의 저술가들의 전통적인 요소들을 계승하면서 한 발은 전통에, 그러나 다른 한 발은 혁신에 두고 있었다. 헤로도토스 이전의 호메로스 시절, 역사는 사실뿐 아니라 신화와 전설들이 혼재되어 있었고, 산문이 아니라 서사시와 같은 운문 형태였다. 그는 산문체로 서술하면서 문학에서 역사를 분리시켰다. 그는 호메로스적인 신화적 전통으로부터 지적 혁명의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고자 하는 중간기를 살았던 인물이다. 그 시대의 진지한 역사란, 멀리 떨어진 나라들이 아니라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곳, 그곳 사람들이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는, 지나간 사실이 아니라 현재의 사실을 동시대인의 관점에서 기술해야 했다. 이러한 지배적 견해가 헤로도토스의 선구자적 역사서술을 미숙한 것으로 보이게 했다.

선배들은 어느 한 도시에서 오랜 세월에 걸쳐 일어난 국지적인 사건에 대해 연대기를 쓰거나 이미 알려진 세계의 이야기를 포괄적으로 기술했다. 그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유기적 관계를 가진 완전한 통일체, 즉 전체적 일관성을 가진 하나의 단일체를 창조하지는 않았다. 헤로도토스의 전무후무한 학문적 업적은 이렇다 할 문헌이 없던 불모지에서 여러 도시,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끌어 모은 다양하고도 때로는 상반된 구전의 잡동사니들 속에서 페르시아 전쟁사를 『역사』와 같은 하나의 통일체로 빚어냈다는 데 있다.

역사가로 산다는 것과 본다는 것
그는 동양의 사마천과 흡사했다. 역사학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러하며 그의 불우한 삶이 그러하다. 그는 그리스 본토 출신이 아니며, 소아시아 남부의 식민 도시 할리카르낫소스에서 태어났다. 페르시아에 의해 그곳 참주가 된 자에게 반란을 꾀한 사건과 관련해 추방되었으며 그의 탐사여행은 이때부터 이루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그의 사상과 저술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아테네에 오랫동안 머물게 된다.

당시 아테네는 다른 분야에서처럼 지적인 면에서도 독보적인 위치에 있었으며, 수많은 사상가들이 그곳으로 모여들었다. 그는 그곳에서 비극작가 소포클레스를 만나 지속적인 교류를 주고받으며 시야를 넓혔으며, 학자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그리고 아테네인들이 자부심으로 이야기하는 페르시아 전쟁에 주목해 『역사』를 집필한다.

그리스인들은 페르시?P 제국에 대한 작은 도시국가의 승리에 도취되어 지역적 애국정신, 민족적 정신 등에 고무되어 있었다. 그러나 헤로도토스는 그 이상을 보았다. 그는 페르시아 제국의 방대한 크기에 놀랐으며 여러 언어를 사용하는 병사들로 이루어진 다양한 성격의 군대이면서도 단일 지휘 체계를 갖춘 것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리스군은 공통된 언어, 종교, 사고방식, 전쟁 목적에 대한 의견일치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 분열되어 있었고, 사령관들은 논쟁을 일삼았다. 페르시아군과 그리스군은 완전히 대조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페르시아 전쟁에서 전제정치 즉, 절대 권력을 가진 페르시아 왕과 입헌정치 즉,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그리스의 이데올로기의 충돌을 보았다. 더 나아가 이민족의 노예화에 대한 그리스의 자유를 향한 도전을 보았다.

『역사』의 모티브는 자유
대제국 페르시아에 맞선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비롯한 그리스인들의 가슴은 어떠한 구속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자유의지로 충만했다. 때문에 이들은 신분과 지위의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고 페르시아에 맞서 싸웠다. 헤로도토스는 페르시아 전쟁에서 자유를 향한 인간의 처절한 투쟁과 몸부림을 보았다. 또한 역사에는 어떤 법칙이 있어 전제적 세력은 결국에는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과 자유를 향한 그리스의 투쟁이 지니는 역사적 의미를 보았다.

그러므로 헤로도토스는 단순히 역사서술을 창시했다는 의미에서뿐 아니라 “자유를 위한 인간의 투쟁”이라는 개념을 제시한 점에서 “歷史의 아버지”인 것이다.

『역사』의 구성
『역사』는 전쟁사를 다루면서도 결코 전쟁 이야기만 다루고 있지는 않다. 원래의 관심사인 페르시아 전쟁을 다루기 전에 그 이전 근동(近東) 역사를 요약해가는 것도 매우 흥미롭고 유익하며 일화들과 전체 사건의 큰 흐름을 조화롭게 짜나가는 방식은 감탄을 자아낸다. 책 곳곳에 삽입된 옛이야기나 설화에서도 이야기체 역사에 대한 그만의 매력과 타고난 재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제1권 서언에서 헤로도토스는 자신의 이름을 밝힌 뒤 그리스인이든 비그리스인이든 인간이 이루어낸 위대한 업적이 망각되지 않고, 동-서가 서로 전쟁을 하게 된 원인을 밝히고자 이 책을 쓴다고 밝힌다. 제1~6권에서는 페르시아 전쟁의 배경을 설명한다. 뤼디아는 크로이소스 치세 때 신흥국 페르시아에게 패권을 빼앗긴다. 동방의 대표 세력으로 페르시아 왕국이 그 모습을 드러내며, 페르시아 전쟁 이전에 있었던 동-서 갈등을 서술한다. 그와 동시에 그리스를 복속시키려던 비그리스인, 즉 크로이소스로부터 퀴로스, 캄뷔세스, 다레이오스 등이 사건 전개의 핵심으로 떠오른다. 그 사이사이 페르시아와 부딪쳤거나 복속된 개별 민족과 나라의 소개가 나온다. 한편 서방에서는 페르시아와 대결할 그리스 본토, 특히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역사가 여러 단계로 나뉘어 기술된다. 이오니아 반란에 아테네가 가담해 사르데이스를 파괴한 시점부터, 페르시아와 그리스의 적대관계는 결정적인 단계로 접어든다.

제7~9권에서 전쟁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데, 마라톤에서 좌초한 다레이오스의 원정에 이은 그의 아들 크세르크세스의 전쟁 결의, 군대의 사열, 영화 「300」으로 널리 알려진 테르모퓔라이 전투, 아르테미시온 전투에 이어 살라미스, 플라타이아이, 뮈칼레에서 거둔 그리스의 대승을 묘사하는 장면에서 『역사』는 절정을 이룬다. 서술 속도도 빨라지고 주제에 어긋나는 설명도 줄어든다. 헤로도토스가 가진 역사가로서의 눈, 서술방식, 역사에 대한 평가 등이 등장한다. 살라미스, 플라타이아이 전투로 페르시아 전쟁은 실질적으로 종결되지만, 그 뒤에도 몇 번의 교전이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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